대한보건교육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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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 시드는 삶에 생기 불어넣는다
사무처02-10 09:04
꽃과 나무, 시드는 삶에 생기 불어넣는다

수도권 날씨가 섭씨 영하 15도로 곤두박질 친 지난 13일. 경기도 고양시의 해븐리병원 실내 정원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아레카야자와 관음죽·스파티필름 등 관상수를 벗 삼아 환자들이 산책하거나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치매로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백모(80·서울 송파구)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입원 당시 백 할머니는 병원의 골칫덩이였다. 의료진에 욕설을 퍼붓고 삿대질하기 일쑤였다. 휠체어에서 떨어져 골절을 입을 위험도 여러 번 넘겼다. 극도의 불안과 흥분 상태를 보이던 할머니가 변한 건 원예치료를 접하고부터. 다른 환자들이 꽃과 채소를 가꾸는 걸 보고 자신도 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직접 씨앗을 심고, 식물에 물을 주면서 격한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이제는 ‘예쁘다’ ‘고맙다’는 긍정의 말과 농담도 건넨다.

요양원·특수학교 등 1100여 곳서 치료

원예치료가 환자의 재활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2001년 창립한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를 중심으로 배출된 원예치료사는 1200여 명 정도. 20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원예치료사 과정이 개설돼 있다. 이들 전문가의 ‘활동무대’도 사회복지시설·요양원·치매센터·특수학교 등으로 확대돼 1100여 기관에 이른다.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 조원근 사무총장은 “매년 배출되는 600여 명의 원예치료사가 환자의 재활은 물론 노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자연의 힘을 건강에 이용했다. 원예치료는 본래 정신질환자를 수용한 시설에서 환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후 치료 효과가 입증되자 신체장애인으로까지 응용 범위가 확대됐다. 원예치료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1950년 원예치료사 강좌가 최초로 개설됐다. 원예치료사는 식물을 이용해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거나 치료하는 전문가다.

해븐리병원의 경우 2008년 개원 때부터 상근 원예치료사를 두고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들은 350여 평의 실내·외 정원에서 씨앗을 심고 식물에 물을 준다. 꽃을 이용해 꽃꽂이나 방향제도 만든다. 이 병원 인지치료실 조문경 박사(원예치료사)는 “원예치료는 뇌신경계 질환자의 빠른 회복을 돕고 힘든 치료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한다”고 말했다.

기억력·판단력 등 뇌기능 회복에 도움

원예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모(50·서울 서초구)씨. 한때 중년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녀는 식물을 기르며 위기를 극복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났어요. 죽고 싶었죠.” 이씨는 당시 식당 운영에,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남편과 대소변도 못 가리는 어머니의 병간호로 극도로 지친 상태였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자살을 생각할 때 문득 화분의 흙을 뚫고 나오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눈에 들어왔다. ‘너희도 이렇게 사는데….’ 이씨는 식물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듯했다. 하나 둘 식물을 심고 가꾸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이 건강해졌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반짝반짝 생명력을 내뿜는 화초를 보며 성취감까지 느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원예치료를 경험한 그녀는 원예치료를 배워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

원예치료는 식물이나 원예를 매개로 하는 보완요법이다. 생명의 싱그러움으로 시각·촉각·후각·미각·청각의 오감을 자극한다.

건국대병원 재활의학과 임정훈 교수는 “조경과 화훼는 손을 많이 쓰기 때문에 기억력·판단력·집중력 등 뇌의 인지기능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다른 치료법과 함께 쓸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설명했다.

실제 치료효과를 보여주는 논문도 많다.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실험에선 환자의 손놀림과 우울증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는 우선 쉽고 간단하게 참여할 수 있는 수경 재배와 단순 꽃꽂이로 환자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이어 나뭇잎 달력 만들기, 새싹채소 기르기 와 주변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는 꽃바구니나 숯으로 정원을 꾸미는 숯부작으로 단계를 높였다. 3개월간의 원예치료 결과, 뇌졸중 환자의 우울감이 감소하고, 손의 근력과 동작이 좋아졌다.(김미영, 서울시립대산업대학원 학위 논문)

α파 많아져 스트레스 해소

녹색식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

원광대 생명자원과학대학 허북구 겸임교수(한국인간식물환경학회 이사)는 “사람은 꽃과 식물을 볼 때 고향에 온 것처럼 긴장이 풀려 기분이 좋아진다”며 “숲이 보이는 위치에 입원한 환자가 벽만 바라보는 환자보다 수술 후 진통제 사용량과 합병증 발병률이 낮고 입원기간도 짧다”고 말했다.

환자가 퇴원한 후 또는 가정에서 돌보는 환자에게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녹색식물의 시각적 자극은 두뇌에 영향을 미쳐 언어·기억·정서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녹색은 혈압과 맥박을 안정시키고,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 감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녹색식물을 볼 때 인간의 뇌파는 심신 안정 상태에서 나타나는 α파가 많아진다.

해븐리병원 이은아 병원장(신경과)은 “급한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만성질환의 경우, 단순히 약물 치료만 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며 “원예치료는 기억장애나 집중력장애·치매·뇌경색·파킨슨병·우울증·수면장애 등에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식물의 종류는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집안에서 잘 자라고 산소를 많이 발생하는 산세베리아나 벤자민·고무나무·스킨답서스·네프롤레피스·싱고니움·아이비 등을 권한다. 시클라멘이나 팔레놉시스·덴파레 등은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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